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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原頫雪寃記

이 설원기는 고려말의 충신이오 성리학의 대가였던 운암공(雲巖公)차원부의 억울한 죽음을 씻어 주기 위하여 조선왕조 집현전 출신인 박팽년공이 어명에 의하여 찬술한 기록이다.

운암공은 고려말인 1320년(충숙왕7년)에 태어났다.자는 사평(思平) 호는 운암( 雲巖) 그리고 본관은 연안(延安)이다.공민왕때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요직을 두루거쳐 문하부(文下府)의 간의대부(종3품)에 이르렀다. 특히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경사에 두루 통달하였다.뿐만아니라 성리학의 핵인 정통(正統)의식 및 대의명분(大義名分)의식에 투철하여 당대의 포은 정몽주와 야은 길재등의 후배들과 교류하였으며 또한 무장 세력을 대표하였던 이성계등과도 친명대의(親明大義)라는 면에서는 서로 뜻을 같이 하기도 하였다.그림에도 능하여 특히 매화를 잘 그렸다고 한다.

차문문헌편찬위원회 위원장 차문섭(車文燮) 인용 설원기 추천문(雪寃記 推薦文)

금년은 유독히 지루한 장마속에 어느덧 여름도 지나고 쾌청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국에 계신 우리 일가 여러분들의 건강( 健康)과 각자 노력하시는 생업(生業)에 무궁(無窮)한 발전을 기원하는 바입니다.

이번 우리 문중 종친회 중앙회에서는 우리 문중의 가장 오래된 문헌(文獻)이며 우리나라 혈통사(血統史(族譜))의 시원(始源)이라 할 수있는 설원기(原名:車原頫雪寃記)가 1980年 원문原文(漢文)으로 복사(複寫)되어 발간 되었으나 20年이 흐른 오늘까지도 후손(後孫)들이 보고자 하나 어려운 한문으로 되어있어 선조님들의 위대한 업적(業績)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1996年 9月부터 이에 대한 국역사업( 國譯事業)을 벌여 우리 차문이 태종 이방원( 李芳遠)과 하륜(河崙)등 일당에 의해 학살(虐殺)된지 600年이 되는 금년 (1998年)에 완간(完刊)을 보아 이를 배포케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렇게 중요한 내용들이 이 문헌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까지 모르고 있었음에 심히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생각컨데 우리는 신라(新羅)와 고려조(高麗朝)를 통하여 28대 나 승상(丞相)을 배출(配出)했다거나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 하여 자존심을 가지고는 있어도 막상 이를 확인시켜줄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를 대지 못하고 그저 객관적인 증거가 희박한 족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우리의 실정이었습니다. 참으로 오랜 기간 고난을 겪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큰 기침하며 그 어떤 문중보다도 그 어떤 명문(名門)의 집안과도 떳떳하게 내어 놓고 한판 따져볼 수있는 입장이 되었다는 것을 선언(宣言)합니다. 왜냐하면 이 설원기(雪寃記)는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요 우리 역사상 절신(節臣)중에 절신(節臣)인 박팽년( 朴彭年)공께서 죽음을 각오(覺悟)하고 쓴 책이며 마찬가지로 사육신중(死六臣中)의 우두머리인 성삼문( 成三門) ,하위지( 河緯地),이개( 李塏),류성원( 柳誠源)공을 비롯한 조선초기의 쟁쟁한 48人의 명신(名臣)들이 응제시(應製時) 등 을 통한 공동참여(共同參與)하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역사실록(歷史實錄)을 쓰는 춘추정신(春秋精神)은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더 큰 뜻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모든 기록은 춘추사관(春秋史官)들이 쓴 정사(正史)의 기록보다도 더 신빙성(信憑性)과 정확성(正確性)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모든 내용은 이제 이 책안에 있으므로 자존(自存)의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는 구차하게 설명하지 말고 버티고 앉아서 슬그머니 이 책을 내어 놓으면서 한 번 읽어보고 이야기 하자고 하면 아무리 자기집안이 명문집안이라고 소위 왕족(王族)이라고 떠든다 하더라도 슬그머니 달아나고 말 것입니다.

이제 더 자세한 내용은 책을 보시면 쉽게 알 수있을 것이므로 이만줄이겠으며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기에 조금만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미 다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마는 운암공(雲巖公)을 비롯하여 아버지 되시는 월파공(月派公)과 아들 되시는 안경공(安卿公),손자 상도공(尙道公)의 유지(遺址)가 수십년전에 평택 장안(平澤 長安)으로 모셔져 1966年 5月에 사당(祠堂)인 의덕사(懿德祠)를 건립하여 득관시조(得貫始祖)이신 대광연안백(大匡延安伯)이하 명조님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후속사업(後續事業)인 신도비(神道碑), 응제시비(應製詩碑) 등을 건수(建竪)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에 따른 재원이 없어 계획단계에 있으므로 유감스럽습니다마는 애초에 이 설원기는 무료(無料)로 제공코자함에 이책은 무요로 드리되 그대신 성금으로 1질(한지 1권, 크라운판 양장 1권)은 7만원, 4×6배판 1권은 3만원을 부담해 주시면 이번기회에 모든 사업을 끝마치어 이곳이 우리 문중의 후손들에게 산 교육장(敎育場)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다른 문중 또는 온 국민의 사표(師表)로서 충효(忠孝)의 교육장으로 활용됨에 부족함이 없도록 할까 하오니 한분도 빠짐없이 모든 후손들의 동참(同參)을 감(敢)히 호소(呼訴)하는 바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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